영화 <반도>는 완벽한 오락영화다. <부산행>의 속편이지만, 전혀 다른 스토리와 전혀 다른 쾌감으로 승부하는 100% 오락영화다.
<부산행>이 맨몸 액션으로 좀비와 1대 1 대결을 그렸다면, <반도>는 카체이싱이 주력 무기다. 어린아이가 자동차 핸들을 잡고 어른보다 더 거친 카체이싱을 보여준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어른 정석(강동원)은 급기야 기절한 듯 정신을 차리지 못할 강도의 카체이싱이다.
이런 뛰어난 카체이싱과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 첫 번째 포스트 아포칼립스, 전형적인 역할을 뒤집은 캐릭터 등 장점이 분명하지만, <반도>는 유난스러울 만큼 '신파'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말미에 민정(이정현)의 선택이나 준(이레)의 리액션, 김 노인(권해효)의 대사 등은 과하게 감정을 끌어올린다.
관객들이 느껴서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어 눈물을 흘릴 때까지 구석에 몰어 넣는 느낌을 받았을 때, 관객들은 이를 '신파'로 규정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반도>의 뛰어난 장점까지 평가절하시키는 '신파'란 도대체 무엇일까. 어렴풋이 어떤 의미인지 '느낌'으론 알지만, 정확히 어떤 의미를 지닌 단어인지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신파란 원래는 일본에서 처음 쓴 신극 용어의 하나로 일본의 구파극인 가부키 연극에 대립하는 칭호로 사용했다. 신파란 용어도 초창기에는 소시 시바이, 쇼세이 시바이 또는 신연극, 신극 등의 이름으로 불렸으며, 1897년 이후 신극 배우 가와카미(川上音次郞)는 연극을 '정극(正劇)'이라고 부른 사례도 있다.
국내에서는 한일 병합조약 체결 및 일제강점기 이후인 1910년부터 유입돼 상연됐다. 처음 신파극이 도입됐을 당시에는 언어만 한글로 바꿔 공연할 뿐, 일본산 신파극을 직수입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국내에서 '신파'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1912년 2월 18일 자 '매일신보(每日申報)'에서 임성구(林聖九) 일행의 혁신단(革新團)이 낸 제2회 공연 광고를 '신파 연극 원조(新派演劇元祖)'라고 이름 지은 것이다.
한국에서의 신파극 발전 과정 역시 일본의 사례를 비슷하게 따랐다. 초기에는 일본식 군사극이 많다가 탐정극을 거쳐 결국 가장 큰 인기를 끈 것은 가정 비극을 다룬 멜로물이었다. 조선 시대의 전래 소설 둥 가정 비극적 요소를 담은 [장화홍련전], [사씨남정기] 등도 공연됐다.
이후 1920년대 근대적 인식이 본격화되면서 개량 신파라는 이름으로 변형됐고, 1931년 극예술연구회가 창립되면서 신극과 확연기 구별되는 장르가 됐다. 신파극도 선진적인 신극의 영향을 받아 발전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졌다.
1935년 동양극장 설립 이후 체계적인 공연 체제를 가동하면서 상업적인 성공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신파극 전문 작가들이 인기를 끌었고, 이야기는 가정 비극과 사극이 주를 이뤘다. 대표 흥행 작품은 임선규의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다.
한국 신파극은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1940년대까지 공연되다가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돼 광고을 맞이함과 동시에 왜색으로 치부돼 소멸했다. 이런 신파극의 소멸이 현대 한국 대중문화에서 영화산업이 큰 지분을 차지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반도> 이전에 신파로 인해 호불호가 갈렸던 대표적인 작품은 <신과함께> 시리즈가 있었다. 1편인 <신과함께-죄와 벌> 마지막 작품은 신파의 정점으로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기도 했다.
※ 참고 자료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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